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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사건/미제사건

대구 어린이 황산 테러 사건 (태완이사건)

by O.N.E O.N.E 2021. 3.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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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어린이 황산 테러 사건 (태완이사건)
(살인사건의 공소시효가 폐지되게 만든 사건으로 "태완이 사건"이라고도 불리고 있는 사건입니다.)

1999년 5월 20일.
당시 만 6살이였던 94년생 김태완군은 학습지 과외를 위해 아침에 집을 나섰습니다.
태완군의 엄마는 "혼자 학습지 하러 갈수 있지? 얼른 갔다와 엄마가 집에서 기다리고 있을게." 라며 배웅을 했고, 이 말을 들은 태완이는 "알겠어. 잘 다녀올게!" 라는 말과 함께 집을 나섰습니다.
그렇게 집에서 나온지 얼마 되지 않아 엄마는 아들의 비명소리를 듣게 됩니다.
처음 비명소리를 들었을 땐, 태완이라고 생각조차 않했기 때문에 대수롭지 않게 넘겼지만, 두번째 비명소리가 들릴때는 자신도 모르게 바로 뛰쳐나갔다고 합니다.
아들의 비명소리를 듣고 밖을 나왔을 때는 이미 아이의 옷은 반쯤 녹아 있었고, 온몸이 타들어가면서 몸이 검정색으로 변해있었습니다. 
제대로 서있을 수도 없던 태완이는 필사적으로 엄마가 있는 집을 향해서 기어오고 있었죠.
그렇게 태완이는 병원으로 옮겨졌습니다. 얼굴과 전신의 40~45%에 달하는 부위에 화상을 입었죠.





태완이의 증언에 따르면, 학습지 과외를 받으러 가고 있는 길에 어떤 아저씨가 "태완아"라며 아이의 이름을 불렀다고 합니다. 
그 아저씨의 손에는 검정색 비닐봉지가 들여져 있었고, 아저씨는 태완이에게 다가갔죠. 
그렇게 태완이의 뒤에 도착한 아저씨는 태완이의 머리카락을 잡아당겨 아이의 목이 뒤로 꺾이게 만든 다음, 비닐 봉지 안에 있던 황산을 그의 눈과 입에 부어넣었습니다.
(황산이 어떤 물질인지 감이 잘 안잡히시는 분들을 위해 설명을 조금 해드리자면, 황산은 어떠한 고기 조각도 순식간에 녹이는 성질을 가지고 있는 굉장히 독한 물질입니다.)
그렇게 눈과 입으로 흘러들어간 그 황산이 태완이의 눈과 식도와 기도를 다 태워버렸습니다. 
아이는 비명을 질렀고, 머지않아 엄마는 바로 집밖으로 뛰어 나와 아이를 병원에 데려가게 된거죠.
아이는 온몸에 화상을 입어 몸 전체를 붕대로 감고있었고, 눈은 실명이 되었습니다.

병원에 들어왔을 때부터 의사들은 태완이가 살 수 있는 확률이 5%밖에 되지 않는다고 얘기 했다고 합니다.
태완군의 엄마는 병상일지를 쓰면서 옆에서 계속 자리를 지켰고, 태완이는 많은 언론의 관심과 국민들의 우려 속에서 힘겹게 버티다가 49일만인 1999년 7월 8일 오전 8시쯤 폐혈병으로 사망하게 됩니다.


태완이의 목숨을 빼앗아간 범인은 과연 누구였을까요?






이 태완이사건에는 목격자가 있었습니다. 그 목격자는 당시 동네 친구였던 이군이였습니다.
이군은 태완이와 똑같이 증언했습니다. "범인이 검정색 비닐봉지를 들고있다가 태완이에게 뿌렸다." 고 말이죠.
그런데 청각장애를 앓고 있었던 이군이 말을 어눌하게 하자, 당시 경찰은 이 아이를 지적장애자로 분류를 하게 됩니다.
이 아이는 그저 청각장애로 인해 말이 조금 어눌했을뿐 지적장애자는 아니였죠.
그래서 가족들이 "이군은 지적장애자가 아니다. 의사 표현이 확실히 가능한 아이이며, 의사소통에 어려움이 있다면 수화통역사를 부르면 된다." 라고 얘기를 했지만, 결국에는 무시를 당하게 됩니다.

태완군은 힘겹게 버티고 있었던 49일동안 엄마와 함께 육성테이프와 여러가지를 남깁니다. 
그 중에 사건에 대해 묻는 엄마의 질문에 아이는 "아는 사람이다. 아저씨가 내이름을 먼저 불렀다." 라고 대답을 합니다. 
당시 태완군이 5일 만에 정신을 차리게 되자, 경찰이 아닌 부모님이 캠코더와 녹음장비 등을 직접 준비해 정신이 든 태완군의 증언을 듣기 위해서 틈틈히 질문을 했다고 하는데요.
이는 경찰이 "태완군의 말이면 된다. 그러니 태완이 한테 물어봐라" 라고 했기 때문이였는데, 정작 경찰은 "자신은 그런 말을 한적 없다. 기억이 안난다." 며 그 증언을 무시했다고 합니다.





이 태완이사건 조사 끝에, 경찰은 김태완군의 부모님과 안면이 있었던 이웃집 아저씨를 용의자로 지목합니다. 
그 이웃집 아저씨는 당시에 치킨집을 운영하고 있었습니다. 
이 이웃집 아저씨는 사건현장에서 아이가 몸이 녹아 소리를 지르고 태완군의 엄마가 뛰쳐나온 상황에 함께 있었으며, 놀란 엄마를 대신해 그 아이를 병원으로 옮겼습니다.
그 이웃집 아저씨가 태완이를 병원으로 옮기것이였죠. 조사는 시작됐습니다.
당시에 치킨집 아저씨의 다리와 팔에는 상처가 있었는데, 경찰은 누군가가 황산을 사람한테 부었을 때, 황산은 액체로 되어있기 때문에 범인에게도 피해가 갔을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마침 아저씨의 다리와 팔에 상처가 있었던 거죠.
치킨집 아저씨는 다리에 난 상처는 얼마전 축구를 하다가 생긴 상처이고 팔에 난 상처는 당시에 부상을 입었던 태완이를 병원에 데려가려다 황산이 나한테 묻어서 생긴 상처라고 이야기 했습니다.





하지만 동네 주민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사실 그 치킨집 아저씨가 생활이 좀 힘들어져 얼마전 태완이네 집에 와 울면서 돈을 빌려달라고 사정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태완이가 자신을 해친 사람은 아는사람이였다고 말을 했지만, 경찰이 태완군은 부상을 입은 후 기억이 온전치 않을 수도 있고, 아직 어린이라는 이유로 그의 증언을 채택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이웃집 아저씨는 기소되지 않고 풀려나게 됩니다.
그렇게 사건이 진행이 되다가 2005년 결국 김태완 군의 대구황산테러사건의 수사부가 해체됩니다.
더이상 범인을 찾을 수가 없어진것이였죠.

유족과 시민 단체는 수사를 다시 해달라며 매일같이 항의를 했고,  2013년 수사부가 해체된지 8년 만에 재수사가 시작됩니다. 하지만 지목할만한 용의자가 없었죠.
더군다나 재수사했을 당시에 경찰들은 아무 장비도 갖추지 않은 채로 황산을 찾는답시고 따을 파는 등의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저질렀다고 합니다.





태완이사건의 공소시효는 2014년 7월 7일이였습니다.
태완 군 아빠는 공소시효 만기 3일을 남겨둔 7월 4일. 다시 이웃집 남자를 고소하게 되어 공소시효가 90일이 연장되게 됩니다.
그렇게 공소시효가 만료되기 전마다 태완 군의 부모님은 서류를 준비해 계속 연장을 시켰지만, 
결국 2015년 7월 10일. 
대법원측에서는 그 이웃집 남자가 범인이라는 증거가 불충분하다며 재항고를 기각하게 되어 그렇게 영구 미제사건이 되었다고 합니다.

그 후 2015년 7월 24일 국회에서는 살인죄의 공소시효를 폐지하는 법안에 대한 투표를 하게 되었고, 단 4개의 기권표만 있었을 정도로 만장일치에 가깝게 법안이 통과됐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 법은 "태완이법"으로 불려지게 되었죠.
하지만 이미 태완이사건에 대한 공소시효는 끝난상태였기 때문에 정작 태완이에게는 적용할 수 없다고 합니다.





이 사건은 워낙 유명했기때문에 모르시는 분은 별로 없을거라고 생각합니다.
저 또한 이렇게 자세하게는 아니였지만 대구에서 일어난 황산테러 사건은 들어본적 있었으니깐요.
그동안 20개가 넘는 사건에 대해 포스팅을 했지만.. 이번 사건을 준비할때에는 마음이 아파 정말 많이 울었는데요.
그 때 당시 경찰들이 조금만 더 관심있게 사건을 조사했다면, 미제사건으로 남지 않았을텐데 하는 마음이 크게 드는 사건이였습니다.

다시는 이런 억울하고 안타까운 사건이 일어나지 않도록, 일어났더라도 범죄를 저지른 사람을 반드시 잡아 마땅한 벌을 받기를 바라면서 오늘의 포스팅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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