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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사건/미제사건

울산 초등학생 방화 살인사건의 전말. <미제>

by O.N.E 2021. 1. 13.







울산 초등학생 방화 살인사건의 전말. <미제>


2006년 9월 6일 오후 3시경.
울산 광역시 남구 달동에 있는 A아파트 주민들이 타는 냄새를 맡고 한명씩 밖으로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올려다보니 13층에서 검은 연기가 뿜어져 나오고 있었죠. 
이에 주민 한명이 급하게 신고를 했고, 얼마 후 소방대원들이 도착합니다. 
그들은 일단 이 아파트 내부로 진입을 하게 되는데, 혹시 이 안에 누군가가 있지는 않을까 걱정이 된 그들은 재빨리 1차적인 화재 진압을 한 후, 황급히 들어가게 됩니다. 
집 안에 들어가니, 방 안에 쓰러져있는 아이가 보였고, 얼른 그 아이를 업고 나와 병원으로 호송했지만 안타깝게도 8살 박 군은 이미 사망한 상태였습니다. 


그날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화재가 발생했던 그날 박 군은 집에 혼자 있었습니다. 
사실 아이를 구조했던 소방대원은 박 군을 발견하자마자 이 사건이 단순한 화재가 아니라는 것을 직감했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당시 큰 방에 쓰러져있던 박 군의 입과 양 손이 청테이프로 결박된 상태였기 때문입니다. 

또한 아이의 얼굴과 몸 옆에 야구방망이와 칼이 놓여있었죠.

대원은 구조를 하고 나서 즉시 아이의 얼굴과 팔목에 있는 청테이프를 떼어냈고, 구급차로 이동을 하던 중 현장에서 봤던 야구방망이와 칼이 생각이 나서 급하게 아이의 몸을 살펴보는데, 이때 머리쪽에 무어언가에 맞아 생긴 듯한 혹이 있었다고 합니다. 
이 후, 아이는 병원으로 갔지만 이미 사망한 상태였고, 의사가 자세히 몸을 살펴보니 두개골이 일부 함몰이 되서 뇌출혈까지 있던 상태였습니다. 결코 일반적인 화재사건은 아니였죠. 

이에 따라 부검이 진행되는데, 부검결과 아이를 사망에 이르게한 직접적인 원인은 질식사였습니다. 

특히나 박군의 기도에는 약간에 끓음이 남아있었는데, 그러니깐 그날 박군이 누군가에 의해 야구방망이로 뒷머리를 한 차례 세게 맞았고, 잠시 의식을 잃었는데 호흡이 약해진 상태에서 불이 났고, 연기를 마시면서 숨진것으로 추정됩니다. 


그렇다면 누가 아이를 공격하고 불을 질렀을까요?






경찰은 일단 울산 초등학생 방화 살인사건이 일어나기 전 박 군의 행적을 추적하게 됩니다. 

그날 낮 12시 30분쯤. 
박군은 친구B와 함께 집에 들어왔습니다. 
아버지는 새벽에 이미 출근을 하셨고, 엄마도 안 계셨던 빈 집이였는데, 박 군은 집에 도착한 직후 아버지에게 전화해서 친구와 놀고있겠다고 알리게 됩니다. 

그리고 조금 후인 12시 38분. 
직업교육을 받으러 나갔셨던 박군의 어머니에게 전화가 왔고, 아들에게 "학습지 선생님 오시기 전까지 숙제 잘 해놓고, 문단속 잘 하고 있어야 된다."라며 당부하셨죠.
박군은 알았다고 말했지만, 문을 잠그지는 않았습니다. 

이후 40분이 지난 1시 10분쯤. 
친구 B군이 집에 돌아간다고 나가는데, 그때 박군은 티비를 보고 있었고 문은 여전히 잠기지 않은 상태였죠.

한편 이날 아파트의 대각선 방향에 있던 옆동 이웃이 오후 1시 45분쯤 우연히 박군의 현관문이 열려져 있는 것을 보았다고 증언합니다. 
그로부터 50분이 지난 2시 35분쯤 그 주민이 다시 아파트 건너편을 봤을 때, 문은 닫혀있었죠.

이 시각 이곳을 방문했던 사람이 있었습니다. 
2시 30분쯤. 학습지 교사가 박군의 집 앞에 도착을 했고, 문을 두드렸지만 인기척은 들리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왜 아무도 없지?" 생각한 학습지 교사는 부모님께 연락을 남긴후에 현관문 앞에 포스티잇을 붙여놓고 다른 집으로 향하게 되죠.
이 때, 연락을 받은 부모님은 3시 이후에 집에 두번이나 전화를 걸었습니다. 
하지만 신호만 갈뿐 아무런 응답이 없었죠.

여기까지 봐서 범행이 일어난 시각은 마지막으로 현관문이 열러있었다고 목격된 1시 45분에서 학습지 선생님이 방문화 2시 30분 사이. 
즉, 45분동안으로 추정됩니다. 이 후에 화재 신고가 3시 40분쯤에 접수됐고, 아이는 사망한채 발견되었죠.

화재 당시 내부가 약 20분동안 진압이 되었는데, 그 과정에서 집 안에 물건들이 엎어져 집은 아수라장 이였습니다. 
여기서 문제는 혹시라도 남아있을 범인의 흔적을 찾는 것이 거의 불가능한 상태였단것 이였습니다.

발화가 된 장소는 방군이 누워있던 큰방과 작은 방 그 사이라고 추정되고 있습니다.
범인은 아이를 기절시켰고, 청테이프로 결박을 한 후에 불을 지르고 창문을 모두 닫은 후, 진열대에 놓여있던 열쇠로 현관문을 잠그고 도주했습니다.
그래서 당시 현장에 도착했던 소방대원들이 문을 열기 위해 10분동안 사투를 벌이기도 했죠.





그런데 여기서드는 의문점 하나가 있습니다. 

범인은 왜 현관문까지 잠그고 나갔던 것일까요?
아이는 이미 정신을 잃어 쓰러져 있었고, 불까지 나는 상황인데 탈출을 해서 신고를 할 것이 두려웠던 걸까요? 아님 누군가 사건 현장을 발견할 것이 두려웠던 것일까요?


울산 초등학생 방화 살인사건 현장에는 단서가 별로 남아있지 않았습니다. 


렇다면 혹시 범인의 단서가 박군의 몸에 남아있지는 않을까요?


아이가 격렬하게 저항을 했다면, 손톱 밑이나 몸 곳곳에 흔적이 남아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아쉽게도 범인의 DNA는 남아있지 않았죠.


그렇다면 아이는 저항을 하지 않았다는 걸까요? 
아니면 저항조차 할 수 없었던 상황이였던 걸까요?






경찰 조사 결과 누군가가 집안 곳곳을 뒤졌던 흔적이 남아있었습니다. 
실제로 이 곳에서 살아진 물품은 화장대 서랍안에 있던 귀금속 5개와 박군의 용돈이였습니다.
박군 아버지의 인터뷰에 따르면 "아이가 가지고 있던 지갑에 그 전날 준 만원과 이전부터 가지고 있었던 4천원, 그 외의 동전이 좀 들어있었는데 그 돈들도 이 날 사라졌다."고 합니다.

그런데 얼마전 '이 아파트에서 좀 떨어진 또 다른 아파트에서 어린아이들을 노린 도둑이 있었다'라는 사실이 전해지게 됩니다.
다른 아파트에서 아이가 혼자있는 집을 누군가가 방문을 해서 집에 있는 오래된 책을 새 책을 바꿔주겠다며 친입을 했다라는 거였죠.

위치가 거리상으로 가깝다는 걸로 봤을때 이 두사건이 혹시 연관이 되어있지는 않을까? 
혹시 연관이 되어있다면, 금품을 노린 강도의 소행이 아닐까? 했지만, 경찰은 이에 대해 부정적이였습니다. 
이런 강도의 소행일 경우 불까지 지르고 가는 경우는 많지 않다고 합니다. 물론 흔적을 지우기 위해 그랬을수도 있지만 아주 드문 케이스라고 볼 수 있었죠.
게다가 범인은 결정적으로 박군의 목에 걸려있던 금목걸이는 가져가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이 아파트는 영세민이 주로 사는 17평 남짓 임대아파트 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굳이 강도가 13층까지 올라가서 도둑질을 했다라는 것은 쉽게 이해되지가 않았죠.
계속해서 추정은 이어져 갔습니다. 
강도사건은 보통 범인이 미리 흉기를 챙겨와서 집안에 들어가 금품을 훔쳐 가는 것이 일반적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박군의 머리맡에 있던 야구방망이와 부엌칼은 모두 박군의 집 안에 있던 물건들이였습니다. 

누군가 이 집에 강제로 친입을 한 흔적이 없다라는 것, 
미리 범행 도구를 챙겨오지 않았다는 것, 
그리고 진열대에 있던 열쇠로 굳이 문을 잠그고 나갔다라는 것을 미루어봤을때 전문가들은 울산 초등학생 방화 살인사건의 범인이 이 집 사정을 잘 알고있던 면식범이거나 혹은 원한관계에 있는 사람일 가능성이 높다고 봤습니다.





그래서 경찰이 박군의 친구들을 살펴보면서 혹시 학교폭력을 당한 것은 아니였는지, 또는 부모님 주변에 뭔가 원한을 살만한 사람이 없었는지 조사했지만, 딱히 의심을 받을 사람은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면식범이 아니라 제 3의 인물일 가능성도 있었습니다.
그 이유는 일단 이 아파트가 93년에 준공이 된 복도식 아파트였는데, 입구는 물론이고 내부에 CCTV가 없었고, 아파트 입구로 들어갈때 보이는 보안장치가 되어있는 문도 없어 누구든지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게다가 사건 당일 박군의 현관문은 잠겨있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누군가 지나가다 우발적으로 저지른 범죄의 가능성도 고려됩니다.
이에 경찰은 지역 전과자와 불량 청소년 중고등 학생들까지 포함해 총 1000여명이 넘는 사람들을 조사했지만, 용의자를 찾을 수는 없었습니다.

사실상 수사관들이 가장 어려워 하는 사건의 유형 중 하나가 바로 방화사건이라고 합는데, 그 이유는 화재로 모든 것이 타버리다 보니 단서를 찾기가 힘들고, 대부분 실내에서 사건이 발생하다 보니 목격자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결국 사건이 계속 미궁에 빠지면서 경찰은 결국 도난당한 귀금속에 초점을 맞추게 됩니다.
그래서 작물전담을 만들어 이 물건들이 어디로 팔려 나갔는지 행방을 쫒게 되는데, 울산을 넘어 부산 넓은 지역까지 조사를 했지만 10년 넘게 의미있는 제보는 없었다고 전해집니다.

이 사건에는 무려 50여명이 넘는 베태랑 형사들이 투입되었고,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애를 썼지만, 

단 한명의 목격자도 나오지않자 수사가 점점 어려워졌죠.


원래 이 사건은 2021년 9월 6일에 공소시효가 만료되는 것이였는데, 

아시다시피 태완이법으로 인해 공소시효가 폐지되면서 사건파일은 다시 열리게 됩니다. 재수사가 시작됐죠.

이 울산 초등학생 방화 살인사건을 담당하는 형사님은 이 당시에 강력팀 소속으로 초동수사를 맡으셨다고 합니다. 
그러다 재수사를 다시 하게 되는데 그러면서 사건이 발생된 이 A아파트를 다시 찾게 됩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당시 사건을 기억하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고 합니다.
장기미제사건에 대한 수사는 맨땅에서 다시 시작하는 것 같은 느낌일겁니다.
울산 경찰청 미제전담 수사 팀자으로 계시는 이 형사님이 "자신의 경찰 인생 26년에서 자신이 맡은 살인사건 중 해결되지 않은 사건은 이 사건이 유일하다면서 책임감을 다해 반드시 범인을 잡겠다."고 굳은 의지를 보여주셨습니다.

국내에 남아있는 수많은 미제사건 중 하나인 울산 초등생 방화 살인사건을 소개해드렸는데요. 

공소시효가 없어지면서 다행히 이제는 영원히 범인을 뒤쫒을 수 있게 됐지만, 정작 수사를 담당하시는 경찰관들에게는 아주 무거운 의무일수 있고 책임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과연 미제사건은 오직 유가족과 담당 경찰만의 것일까요?

어쩌면 우리의 지속적인 관심이 그들에게 작은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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