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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사건/해결사건

서울 송정동 여아 토막사건. (최인구사건)

by O.N.E 2021. 1. 8.








서울 송정동 여아 토막사건. (최인구사건)


서울 성동구 송정동에 살고있는 4살된 김윤지라는 아이는 이웃들의 사랑을 독차지하는 아이였습니다. 
얼굴도 인형처럼 너무 예뻤고, 인사성도 바르고 또 애교까지 많아서 주변 이웃들이 친딸처럼 아꼈던 아이였죠. 
그러던 어느날 2001년 5월 10일.

윤지양이 오랜만에 아버지와 6살된 오빠와 함께 집 주변에 있던 중랑천으로 산책을 나가게 됩니다. 
산책을 하던 중 아버지가 혼자 조깅을 할 생각으로 아들에게 윤지양을 잠깐 맡기게됩니다.
아이들은 아빠가 갔다가 오는 동안 중랑천 앞에 놀이터에서 놀면서 아빠를 기다리기로 하죠.
하지만 아빠가 돌아왔을때, 윤지양은 사라져버렸습니다. 불과 30분만에 벌어진 일이였습니다. 
오빠 또한 동생이 어디로 갔는지 행방을 전혀 몰랐습니다. 
놀란 가족들과 동네 주민들은 윤지양을 찾기위해 동네 구석구석을 뒤졌습니다. 
하지만 아이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문제는 아이를 봤다고 하는 목격자도 없었다는 겁니다. 
경찰에 실종신고를 하긴 했지만 여전히 아이의 행방은 묘연했습니다. 

그런데 이게 만약 유괴된 것이였다면, 보통은 금품을 요구하는 전화가 걸려와야 하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협박전화 한 통도 걸려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가족들은 윤지양이 유괴를 당한건지, 아니라면 단순 실종인건지 정확한 판단조차 하지 못한 채 계속 윤지양을 찾아다니고 있었죠. 
하지만 수사엔 진전이 없었습니다. 주변사람들과 근처 수상하다고 의심됐던 사람들까지 다 조사를 했지만 아무런 단서도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다 실종 9일차인 5월 19일 오전 8시. 
송정동 주택가 골목에서 새벽에 폐지를 주우러 다니던 60대 김씨는 웬 등산용 배낭을 발견하게 됩니다. 
김씨는 호기심에 배낭을 열어보니 가방 안에 차가운 비닐봉지 3개가 단단히 묶여 있었습니다. 
곧이어 뭔가 수상함을 느낀 김씨는 비닐봉지를 풀어보게 되는데 각각의 비닐봉지 안에는 토막난 사체들이 들어있었습니다. 신고전화를 받은 수사팀은 곧바로 현장으로 가게 되죠. 
이 잔혹하게 토막난 시체는 얼마전 사라진 4살 김윤지양의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배낭은 윤지네 집에서 약 500m정도 떨어진 곳에서 발견되었고, 실종 장소에서는 약 200m정도 떨어진 장소에 놓여져있었습니다. 
윤지네 가족이 쉽게 발견할 수 있는 그런 위치에 놓여져 이었던 것이였죠. 





발견 당시 냉동상태였는데, 

더 특이했던 점은 아이의 왼쪽 코에 솜으로 보이는 하얀색 물체가 가득 들어있엇고, 입에도 가득 물려있었다는 점입니다. 
또 다른 특이점은 시신의 등에는 약 1.5cm의 간격으로 무언가에 눌린 흔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더 경악스러운 것은 이 토막난 시체중에 하반신 부분이 발견되지 않았다는 것이였습니다. 
당시 하반신의 종아리 부분은 있었는데 엉덩이 둔부 부분과 허벅지 부분은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경찰은 송정동 여아 토막사건 범죄 방식에 대해서 상당한 충격을 받고, 먼저 윤지양 부모의 주변인물들을 중심으로 수사를 진행하게 됩니다. 
그리고나서 송정동 일대의 동일수법을 가지고 있던 전과자나 또는 아동성범죄 유사 전과자 수백명의 리스트를 뽑고, 수사에 들어갔습니다. 





여기서 굉장히 특이했던 유일한 단서는 무엇이였냐?? 


바로 윤지양의 등 쪽의 있던 의문의 줄 자국이였습니다. 
무엇가에 눌린듯한 1.5cm의 일정한 줄자국이 등에 나있었습니다. 


이 자국은 도대체 어떤 자국이였을까요??


수사를 해본 결과, 시신을 얼리기 위해 넣었던 냉장고 내부의 바닥 부분이였다는 것을 밝혀내게 됩니다. 
그리고 그 문제의 모양이 S사에서 나온 구형 냉장고 모델이라는 것을 확인하게 되죠. 
그래서 송정동 일대의 가정집과 업소들을 다 뒤지면서 해당 냉장고를 사용하는 곳을 찾아다니게 됩니다. 





그러던중 5월 21일 오전 9시 40분. 
경기도 광주 경찰서에 한 통의 신고전화가 들어오게됩니다. 
"여보세요. 여기 여관인데, 제가 객실 청소하다가 변기에서 이상한 걸 발견했어요. 이게 어린아이의 엉덩이 같아 보여요. 빨리 좀 와주세요."
이 전화를 받은 광주경찰서의 경찰들이 현장에 도착을 합니다. 
그곳 방안에서 발견된 것은 허리 아래의 시체와 허벅지 나머지의 토막 시체였습니다. 
청소 아주머니의 증언에 따르면 아침에 그 객실에 40대정도로 보이는 남자가 투숙하고 나갔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여기까지는 우리가 '범인은 송정동에서 사건을 저지르고 나서 시신의 일부를 경기도 광주로 가지고와 여관에 유기를 하려고 했던 것이다.' 라고 추정을 해 볼수가 있습니다.





한편 송정동에서는 리스트를 계속 만들어냈고, 용의선상에 있던 사람들을 줄여나가던 도중에 어린이 성추행 전과가 있는 4명의 남자를 용의선상에 올리게 됩니다. 
그리고 그들을 중심으로 각각 탐문수사를 하던 중 송정동 여아 토막사건의 한 용의자 집에 방문하게 됩니다. 
그 곳에서 그동안 찾던 것을 발견하게 되죠. 
이 집은 반지하방이였습니다. 하지만 집인지 아닌지 헷갈린 만한 외관을 가지고 있었고, 그래서 그전에 경찰의 수사망을 피해간 것으로 여겨졌습니다. 
그런데 집에 들어가니, 경찰이 그렇게 찾아 헤매던 S사의 구형 냉장고가 있었고, 냉장고를 열어서 냉동실의 바닥에서 핏자국을 발견합니다. 
그 후 그의 방 안에 있던 낚시가방을 열었는데 여기서 어린이 멜빵이 발견됩니다. 
이 냉장고와 벽 사이에서는 살해에 이용이 됐던 비닐의 흔적이 발견이되었고, 
부엌에선 범행에 이용되었을 것이라고 추정되는 칼과 톱과 도마가 씻겨진채 가지런히 정리되어있었다고 합니다. 

결국 이곳에 살고있던 최인구사건의 범인 최씨는 그렇게 경찰에 체포됩니다.


과연 윤지양이 죽기전까지는 무슨일이 있었던 걸까요?






최인구는 1998년 2월 5일. 
송정동 여아 토막사건이 있기 전, 이미 다른 여자아이를 성추행 하다가 징역 2년 반을 살고 출소한지 1년밖에 되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하지만 그는 공장에서 일을 하다가 손가락이 잘린 상태였고, 제대로 일을 해서 돈을 벌 수 없던 힘든 형편이였죠. 

 

그러다 최인구사건이 일어난 당일.
그는 그 전날 새벽까지 술을 먹고 오후 늦게 일어나게 되는데 자신의 집 주변 중랑천 방둑에 앉아있다가 혼자 놀고있는 윤지양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는 범행을 마음먹죠. 
최인구는 윤지양에게 다가갔습니다. "아저씨가 아이스크림 사줄게" 하면서 아이를 유인하게 됐죠. 
윤지양은 그렇게 아저씨를 따라가게 됐고, 최인구는 아이를 자신의 반지하방으로 데려가게 됩니다.

그런데 방에 들어온 아이는 계속 울기만 했습니다. 
최씨는 아이에게 집전화 번호를 물어보지만 아이는 계속 울기만 했습니다. 
계속되는 울음에 최씨는 당황하게 되고 급기야 아이의 목을 조르게 되죠. 
그런데 아이가 코피를 흘리면서 입에서 거품을 토해내기 시작하게 됐고, 이 모습에 더 당황한 최씨는 결국 화장지로 아이의 코와 입을 틀어막게 됩니다. 
결국 이 것 때문에 아이는 질식해서 사망하게 되죠. 

 

 




생각지못하게 아이가 죽어버리니깐 방안에서 이 아이의 시신을 어떻게 처리해야할지 고심하다가, 

결국 자신의 방에 있는 도구들로 토막을 낸 후 자신의 냉장고의 냉동실과 냉장실에 사체를 나눠서 보관하게 되죠. 
그리고 그것을 며칠 후 4개의 비닐봉지에 나눠서 담습니다. 
그리고 유기하려고 했던 3개의 비닐봉지만 배낭안에 넣어서 송정동 주택가에 그냥 버리게 되죠. 
그로부터 2일 후. 남아있던 나머지 비닐봉지 한 개를 경기도 광주에 한 여관으로 가서 변기속에 유기하고 잠적하게 됩니다. 
이 후 최씨는 수도권의 여관을 계속 전전긍긍하면서 숨어지내게 됐죠. 

그런데 이게 다가 아니였습니다. 조사과정에서 최씨가 이제 4살된 아이를 상대로 몹쓸짓을 했다는 것이 드러나게 됩니다.
송정동 여아 토막사건의 범인 최씨는 수사과정에서 나온 모든 혐의를 인정했지만, 성폭행에 있어서는 강력하게 혐의를 부정했습니다. 


"나는 절대 그 아이에게 성적으로 손을 대지 않았다." 라고 주장을 했지만, 국가수 검사결과 그 것은 거짓말이였습니다. 

윤정양 사체의 특정부의 2곳에서 최씨의 정액 반응이 나오게 된거죠.





결국 나중에 수사를 통해서 최씨는 "여러번 시도해봤는데 아이가 너무 어려서 실패했고, 아이가 하도 소리를 지르니까 겁이 나서 살해했다." 라며 자신의 성폭행 시도를 인정하게 됩니다.
최씨는 범행 동기가 돈이 필요해서였다고 이야기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단 한통의 전화도 아이의 부모에게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아이를 보면 성적욕구를 느끼는 소아기호증을 가진 변태적인 인물이였습니다.
최인구는 살인 및 사체유기 혐의로 2001년 10월 19일 서울동부지법 1심에서는 사형 판결을 받았지만, 최인구가 이에 불복하여 항소했고, 2002년 1월 30일 서울고법 2심 판결에서 무기징역으로 감형이 되어 경북북부교도소에서 현재까지 복역중입니다.

이 최인구라는 사람은 만약 그 당시에 경찰에 검거되지 않았다면, 

아마 또 다른 곳에서 제 2의, 제 3의 피해자를 만드는 연쇄살인범이 될 수도 있는 그런 인물이였을 겁니다.
지금까지 대한민국에서 잊을 수 없는 또 하나의 유괴사건인 송정동 여아 토막사건(최인구사건)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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