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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사건/해결사건

이동식살인사건. "죽음을 찍고 싶었던 것 뿐이예요!!"

by O.N.E 2020. 12. 31.








이동식살인사건. "죽음을 찍고 싶었던 것 뿐이예요!!"


1982년 12월 14일.
서울특별시 구로구 호암산에 한 별장 근처에서 어린아이들이 놀다가 아주 이상한 것을 하나 발견하게 됩니다. 처음에는 '마네킹인가?' 하고 생각을 했죠. 
하지만 다가가서 본 아이들은 깜짝 놀라게 되고 바로 경찰에 신고를 하게 됩니다. 
굉장히 추운 날이였기 때문에 경찰이 도착했을때, 이 젊은 여인의 시체는 꽁꽁 얼어있었다고 합니다. 
알고보니 죽은지 28일 만에 발견이 된 것이였습니다. 
이 시체는 낙엽 더미에서 나체의 모습으로 발견됐는데 이상했던 점은 저항을 하거나, 둔기 같은 것으로 맞은 외상의 흔적이 전혀 없었다는 점이였습니다. 
그리고 경찰은 3일만에 그녀의 신원이 밝혀내게 됩니다. 
그녀의 이름은 김경희. 경북 경주출신이였습니다. 
그리고 그녀는 현재 경기도 성남 신흥동에 거주하고 있었습니다. 


아니 근데 경기도 성남에 거주하는 여성이 왜 여기 구로구까지 와서 나체로 발견이 된 것일까요? 






경찰은 이 피해자 김경희의 부검을 시작했고, 또 그녀의 주변 관계도를 조사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면서 찾아낸 한명의 인물이 있었습니다. 
그의 이름은 이동식 이였습니다. 
경찰은 바로 이동식의 집에 찾아가게 됩니다. 
이동식과 얘기를 하던 경찰은 그가 무슨일을 하고 있는지 물어봤더니, "본업은 보일러 배관공이며, 사진찍는 일을 취미로 하고 있다." 라고 대답을 했습니다. 
사진전, 각종 공모전에서 11번이나 수상 했으며, 또 개인 전시회까지 한 적이 있는 아마추어 사진작가 였습니다. 
당시 수사반장은 이동식에게 사진작가라고 하니 사진좀 보여달라며 요청을 했는데, 
이동식은 약 100장의 사진을 자신의 작품이라고 보여주기 시작했습니다. 





이동식이 보여준 그 사진 안에는 '여성에 나체모습, 무엇인가에 찔려서 여성이 피를 흘리고 있는 모습, 여성이 목을 멘 모습, 또는 마치 시체를 연상하게 하는 아주 끔찍한 장면의 사진'들이 담겨있었습니다. 
경찰은 본능적으로 '뭔가 있다.' 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그래서 경찰은 이동식의 집을 수색하기 시작합니다.

경찰이 집을 수색하는 중간에 이동식이 사진 한 장을 급하게 숨기는? 듯한 모습을 포착하게 됩니다.
그 사진은 여성이 회색 치마를 입고, 낙엽 위에 누워있는 모습이였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얼굴이 하얀 천으로 가려져 있었습니다. 
이건 누가 봐도 시체를 연상하게 하는 사진이였죠. 
그 사진을 본 수사반장은 집요하게 추궁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사진의 모델은 누구냐?, 언제 찍은 거냐?, 왜 이런 사진을 찍은 것이냐?" 등등 물어보니 이동식은 "내가 모델을 고용해서 연출해서 찍은 사진이다." 라고 답을 하게 되죠. 이 사진을 본 경찰들은 이동식의 집을 더 꼼꼼하게 수색하게 됩니다. 
그러다 한 경찰이 그 소장실에 일부분만 도배가 되어있는 걸 보고 벽을 두들기니 합판이 있다는 걸 발견, 합판을 뜯어내어 사진이 들어있는 필름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 것은 이동식을 체포하게 되는 결정적인 증거물로 확보가 됐죠. 


이동식이란 사람은 어떤 사람이였을까요?






어려서부터 아주 불우한 가정환경속에서 살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잦은 학교 폭력에 시달렸다고 하는데 그러면서 이동식이 삐뚤어진 방향으로 자란것 같습니다. 
체포 됐을 당 시만 해도 이동식은 이미 각종의 범죄행각으로 이미 전과 4범이였다고 합니다.
이런 열악한 상황 속에서 그는 우연히 사진을 접하게 됩니다. 
그러다 자신도 모르고 있던 사진에 대한 재능을 발견하게 되죠. 
그러면서 적극적으로 사진활동을 시작하게 됩니다. 
사진전에서 은상까지 받을 정도로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 있었다고 합니다. 
사실 30대 중반이라는 늦은 나이에 사진에 취미를 붙이게 된것이였는데, 그런 재능까지 더해져서 사진 공모전에서 상을 받고 그러니깐 일에 대한 열정이 있었던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가 사진 공모전에서 입상하게된 결정적인 사진은 무엇이였을까요?






바로 닭이 피를 흘리면서 죽어가는 모습의 사진이였다고 합니다. 
그 사진이 그를 사진계에 발을 들여놓게 만들었던 계기가 되었던 것이였죠. 
그러면서도 여러차례 입상을 하게 되는데 1982년에는 '한국사진작가협회'에 가입도 하게 됩니다. 
그는 이 협회안에서 충격적이지만 신선한 사진을 찍는 작가라는 평판을 얻었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배관공이라는 일을 하고 있었지만, 계속해서 사진작업을 하다가 일본에 누드사진집을 탑독하게 되면서 성과 죽음의 이미지에 빠져들게 됩니다. 

그러던 어느 날, 평소 자주 드나들고 있던 이발소에서 피해자 김경희를 만나게 됩니다.
당시 김경희는 이발소에 면도사로 일하고 있었습니다. 
정확하게 이 내용이 사실인지는 모르겠지만 김경희가 일하던 이 이발소는 퇴폐 이발소였다고 합니다. 
그래서 일하는 여성들은 속옷을 입지 않고 일하고, 손님들에게 어떠한 제공할 수 있는 가능성의 여지를 두는 그런 퇴폐 이발소였다고 합니다.
이동식은 김경희와 친해지게 되고, 정을 나누다가 애인사이로 발전하게 되는데 김경희에게 자신이 찍은 사진집이라며 무엇인가를 보여주게 됩니다.
 
그 것은 어떤 여자의 누드사진을 모은 자작 사진집이였습니다. 
그러면서 "너 누드모델 해볼래? 내가 이런 좋은 작품을 만들면 너 완전 출세할 수 있어. 저런 이발소에서 일 안해도 돼. 한 번 해보자. 일단 내가 이번꺼 하나 찍는데 5만원 줄게." 라며 김경희를 꼬시기 시작합니다. 
당 시 김경희는 이 제안에 굉장히 혹했던것 같습니다. 
이 곳에서 벗어나고 싶었고, 돈도 얻을 수 있었을테니깐요. 
그래서 그녀는 이동식에게 사진 촬영에 임하겠다고 대답 합니다. 





이 후, 이동식은 어느 날 김경희를 구로구 시흥동에 위치한 이 호암산에 데려가게 됩니다. 
그리고 사진촬영을 준비하게 되죠. 물론 누드촬영이였습니다. 
김경희는 누드촬영을 위해서 옷을 벗어야 했는데 여기서 이동식이 이렇게 이야기 하게 됩니다. 
"너 조금있다가 옷 벗고 촬영하게 되면 아무래도 감기에 걸릴것 같은데 감기예방하는 차원에서 이 감기약이라도 먹고있어." 라고 얘기하며, 약을 그녀에게 건네주게 됩니다. 
약을 먹은 김경희는 사진촬영에 임하게 됩니다. 
그런데 점점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죠. 
목이 타들어 가는 것 같고, 점점 속이 불편해 지고.. 그녀는 그러다 아주 큰 고통을 느끼게 됩니다. 
더이상 자신은 제대로 서 있을 수도, 카메라를 보고 포즈를 취할 수도 없게 됐습니다. 
사실 이동식은 그녀에게 건네준 감기약 안에 청산가리를 풀어서 넣어놓은 것이였죠.
사진을 찍어대는 이동식 앞에서 김경희는 고통스럽게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럼 이동식은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요?






아무런 죄의식도 느끼지 않고, 이 고통속에서 몸부림치고 있는 김경희가 점점 죽음으로 가는 순간까지 무려 21장의 사진을 찍어냅니다.
지금은 이 사건을 잘 모르시는 분들도 많이 계시지만, 이 사건은 굉장히 유명한 사건 이였습니다.
숨진 피해자 김경희의 시신은 낙엽으로 대충 묻어놓고 내려가게 되고, 
28일이 지나고 이 범행장소에서 총싸움을 하고 놀던 아이들에게서 발견이 되게 됐던 거였죠.

이동식은 자신의 사진에 리얼리티를 담고 싶었다고 합니다. 
성과 죽음에 관심이 많았고, 정말 리얼한 사진을 찍고싶어서 그녀를 진짜 죽음에 몰고 가게 한 것이였죠.

하지만 체포된 이동식은 순순히 자신의 죄를 자백하지 않았습니다.
"내가 김경희를 만난것은 사실이고, 그때 내가 사진을 찍었지만, 나는 사진을 찍고나서 먼저 집으로 갔다. 내가 가고나서 이여자가 자살한건지 어떻게 아냐?" 며 발뺌을 하기 시작한 것이였죠.





그런데 경찰이 또 다른 단서들을 찾아냅니다. 
먼저 경찰은 사진 뒤에 적혀진 현상소를 찾아갔습니다. 
종로에 위치한 이 무허가 현상소에서 이동식이 맡긴 수상한 사진들을 현상해 줬다는 걸 알게 되죠. 
이 현상소 주인은 '그냥 범죄현장 검증사진인줄 알았다. 우리는 모르고 현상해 준것이다. 이동식이 경찰인줄만 알고 있었다.' 라고 진술했다고 합니다.

이에 그치지 않고, 경찰은 전국 사진 관련인들을 찾아가 조언을 구하려고 계속 시도한 끝에 결국 모 대학 유명 사진과 교수에게 '사진을 현미경으로 확대해서 솜털이 서있으면 살아있었다는 것을, 솜털이 누워 있으면 이미 사망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라는 조언을 얻게 되었습니다. 
이 조언을 가지고 사진을 검증해본 결과, 솜털이 서있다가 점점 누워가는 흔적들을 발견했고, 결국 살아있을 때부터 죽어가는 사람을 찍었다는 것이 입증되면서 증거로 채택이 되었습니다.
(이동식은 일반인들이 거의 쓰지 않는 고해상도의 카메라를 사용했었기 때문에 현미경 확대가 가능해서 땀구멍이나 솜털을 확인해 증거로 채택될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여러가지 주변의 증언들 증거들을 찾아서 그는 결국 체포가 되게 됩니다.
그렇게 이동식은 1심에서 사형을 선고받습니다. 
사형을 선고 받지만, 이동식은 굴하지 않고 형량이 너무 무거운것이 아니냐며 계속 항소와 상고를 거듭합니다. 
하지만 모든것은 기각되고, 결국 1984년 2월 16일 대법원에서 이동식의 사형을 확정판결하게 되죠. 
2년 3개월 후인, 1986년 5월 27일. 이동식은 서울 구치소에서 사형을 집행당합니다.
이렇게 엽기적인 살인사건은 이렇게 막을 내리게 됐죠.

당시 이동식에게 당한 피해자가 김경희말고 더 있을거라는 이야기도 많이 나왔다고 하는데, 이 사건 특유의 엽기적인 모습이 외신에 알려지자 윗분들?이 "나라 망신 시키지 말고 빨리 사건 종결하라." 고 경찰에 압력을 넣어 결국 추가 조사는 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이 이동식살인사건은 굉장히 엽기적이면서 충격적인 사건라고 할 수 있는데요. 
실제로 범죄 관련 프로나 드라마에서 단골 소재로 쓰이고 있다고도 합니다.
다시는 이런 범죄가 이러나지 않기를 바라면서 오늘의 포스팅은 여기서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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