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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사건/해결사건

한국 최초 여성연쇄살인마 김선자 그 사건의 전말...

by O.N.E 2020. 12. 15.

 

 

 

 

 

 

 



한국 최초 여성연쇄살인마 김선자 그 사건의 전말...

1986년 10월 서울에서 열린 아시안게임이 폐막을 했는데, 한국이 숙적인 일본을 제치고 2위를 차지했고, 

1위였던 중국과도 금메달 1개 차이였던 기대이상의 성과때문에 온 국민이 축제 분위기였습니다. 
게다가 1988년인 2년 뒤에 열릴 서울올림픽 준비로 국민들이 다 기대와 흥분상태였습니다.

 

이렇게 온 나라가 축제분위기였을때, 서울에서는 전대미문의 여성연쇄살인마의 연쇄독살살인사건이 시작됩니다.


 

 




1986년 10월 31일 아침. 
여성연쇄살인마의 독살살인사건의 시작으로,

서울 신당동에 살고있는 40대 여성 김계환씨. 그녀에 이웃으로는 김선자라는 40대 여성이 있었습니다. 
김선자가 김씨에게 오더니 함께 목욕을 가자고 했고, 두 사람은 함께 동네 목욕탕에 가게 됩니다. 

오전 10시쯤 탈의실에 있던 김씨가 갑자기 가슴의 통증을 호소하면서 호흡곤란을 일으킵니다. 
그러더니 몸에 심한 경련까지 일어나게 됩니다. 거품을 물고 바닥에 쓰러졌죠. 
이 모습을 보고있던 목욕탕 사람들은 그녀를 인근 응급실로 옮기게 되지만, 
그녀는 사망하게 됩니다. 

신고를 받고 경찰이 출동했습니다. 
그리고 목욕탕 주인과 손님들을 대상을 탐문을 벌이게 됐지만,  특이점이나 혐의점은 발견할 수가 없었습니다. 
사망한 김씨의 당일 행적을 파악하기 위해서 가족, 주변인물을 조사 했지만 그들은 '이웃집 여자 김선자가 목욕가자고 해서 집을 나선게 다 입니다.' 라고 말을 했고, 이 진실 외에는 사실 의심할 만한 점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가족들이 이상한걸 발견합니다. 
김씨가 목욕탕을 갈때 몸에 지니고 있던 진주목걸이와 반지 같은 귀중품들이 보이지 않았다는 겁니다. 

그래서 결찰은 목욕탕을 함께 갔었던 김선자를 유력한 용의자로 의심하고 조사를 했지만 
김선자는 '목걸이같은건 본 적이 없다.' 라고 하면서 자신은 모르는일이라고 일관했고, 
게다가 경찰도 그거에 관련된 핵심적인 증거를 찾지 못하게 됩니다. 

물론 수많은 의심 점들이 있었지만, 과학수사가 발달 되지 않았던 1980년 대 였기때문에 

이 사건은 미해결 사건으로 남게됩니다. 





그리고 나서 5개월이란 시간이 흘렀습니다. 1987년 4월 4일 오전. 
김선자는 50대 전순자씨에게 영등포쪽에 돈을 받으러가는 같이 가자는 제안을 하게 됩니다. 

전씨는 김선자와 같은 계모임의 회원으로 김선자가 전씨에게 700만원을 빌려갔는데 아직까지 돈을 돌려받지 못한 상황이였습니다. 그런데 김선자가 '내가 오늘 영등포에서 돈 받을게 있는데 같이 가자. 그럼 그 돈 받아서 너한테 갚을게.' 라고 이야기를 했기 때문에 따라 나서게 된거죠. 

그런데 전씨가 버스를 타고 서울 용산역 근처를 지나던 중 
갑자기 경련을 일으키더니 배를 부여잡고 바닥에 쓰러집니다. 

버스는 급히 차를 세우고 전씨를 병원으로 옮겼지만, 응급실에 도착 할때쯤 그녀는 숨을 거두고 맙니다. 

사망한 전씨의 주소지는 신당동이였습니다.

그런데 이 사건이 용산구에서 벌어졌었기 때문에 관할지 였던 용산 경찰서에서 수사를 맡게 됩니다. 

경찰은 처음에 버스기사와 승객들을 대상으로 수사를 벌였습니다. 
하지만 딱히 수상하거나 의심을 살만한 사람을 발견하지 못하게 됩니다. 
가족들에게도 이상한 점이 없었습니다. 전씨는 자살할 이유가 전혀 없는 사람이였습니다. 

그런데 용산경찰서에서 탐문수사 끝에 '용산이 아닌 신당동에서 목욕탕에서 얼마전에 비슷한 증상으로 한 중년 여성이 사망했다.' 라는 것을 파악하고 이에 김선자가 연관되어 있다는 것을 보고 다시 조사를 하게됩니다. 

하지만 이번에도 그녀를 체포할 만한 증거가 나오지 않았습니다. 
1980년대 부검이라는 것은 고인을 2번 죽이는 일이다라는 이유로 가족들이 쉽게 결정할 수 없는 일이였습니다. 

이렇게 경찰의 수사망을 빠져나간 김선자는 갈수록 더 대범해집니다. 


 

 

 

 

 



1988년 3월 27일. 
경기도 이천에 친척 회갑잔치에 다녀오던 70대의 김종춘씨 그는 김선자의 아버지 입니다. 
그가 서울에서 돌아오는 시외버스 안에서 갑자기 어지러움과 구토증세를 보이다 의식을 잃고 쓰러집니다. 
그리고 이 일은 버스를 타기 직전 딸이 준 건강음료를 마신 후에 일이였습니다. 

노인 김씨는 병워능로 옮겨졌지만 사망했고,

이사건은 노인성 심장마비에 의한 자연사로 처리되었고 시신은 화장 후에 안장됩니다. 


 

 




그리고 한 달 후 4월 29일이였습니다. 

 

낮 12시쯤에 김선자와 그녀의 40대 여동생인 김문자씨는 성동구 화양동의 어린이대공원 근처에서 만나게 됩니다. 
두사람은 그간의 이야기를 나누다가 언니인 김선자가 동생에게 건강음료를 건냈고,

이걸 동생이 마시면서 이야기를 나누다가 헤어지게 됩니다. 

 

그리고 동생 김문자는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서 시내버스를 타게 되는데

버스를 탄지 얼마지나지 않아서 바닥에 쓰러져 버립니다.  응급실로 바로 옮겨졌지만 그녀 또한 사망하게 됩니다. 

그런데 김선자는 병원에서 동생이 죽은 것을 확인하고 슬퍼하는 기색도 없이 
동생의 핸드백을 훔쳐서 현금 1000만 원, 그리고 700만 원 상당의 귀금속을 가져가게 됩니다. 

당시에 김선자는 동생에게 약 1000만원에 달하는 빚을 지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한달 사이에 아버지와 여동생이 같은 방식으로 사망을 했는데도 불구하고

어쩐일인지 죽은 동생 또한 아버지처럼 심장마비에 의한 자연사로 처리됩니다. 


 

 




이후에 여성연쇄살인마인 김선자는 1988년 7월 8일. 
이번에는 40대 여성 손시원씨에게 접근을 하게 됩니다. 이 손씨는 김선자의 시누이입니다. 
'좋은집이 있다면서 돈만 가져오면 바로 계약할 수 있다.' 며 다방으로 불러내게 됩니다. 
손씨는 가족관계였으니깐 믿고 계약금을 들고 다방으로 갔습니다. 
그리고 돈을 받은 김선자는 미리 준비한 건강음료를 마시게 한 뒤에 유유히 사라집니다. 

손씨는 버스를 타고 귀가하던중 용산구 서빙고동 어디쯤에서 어지럽다면서 의식을 잃고 쓰러졌고 사망합니다. 

다행히 손씨의 시신은 이전 피해자들과는 달리 부검이 실시됐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사망의 원인이 '청상가리 중독' 이라는 것이 밝혀지죠.  즉, 독살당했다는 겁니다. 


 

 

 




경찰조사가 시작됐고, 죽은 손씨의 행적을 파악하다가 마지막으로 만난사람이 바로 김선자임을 확인합니다. 

그래서 경찰은 바로 김선자의 행적을 조사하게 되는데,

지난 몇 달 동안 이 여성의 주변 인물들이 다 의문의 죽음을 당했고, 
한 사람을 빼고는 모두 버스를 타고 가다가 변을 당했으며, 
모두 김선자가 건낸 건강음료를 마셨다는 것도 확인하게 됩니다. 

그래서 경찰은 김선자를 '강도살인 및 강도살인미수 혐의'로 체포를 하게 됩니다.
한국 역사상 최초의 여성연쇄살인마를 체포하게 된것이죠.

하지만 김선자는 이때 자신의 범행을 완강히 부인하게 됩니다. 
'증거 있어? 증거 내놔!!' 하며 큰 소란을 일으키게 되죠. 

마지막 피해자였던 손씨를 제외하고는 다른 피해자들은 
다 병사로 처리되어 화장을 했거나, 이미 매장되어 있는 상태였습니다. 
그러다 보니 그녀가 저지른 범행을 증명할 수 있는 결정적인 증거가 없었습니다. 


 

 

 

 




경찰은 일단 법원에서 압수 수색영장을 발급받아 신당동에 있었던 김선자의 집으로 
들이닥치게 되는데 집 안에서 범행에 증거물들이 쏟아져 나오게 됩니다. 

그동안 피해자들에게서 훔친 귀금속, 수표, 현금, 
특히나 마지막으로 살해된 손씨는 수표를 발행을 했었는데, 
그 수표가 김선자의 예금 계좌에 입금된 것도 확인이 되었죠. 

게다가 결정적으로 청산염 조각이 발견됐습니다
이건 집안을 수색하고 있던 한 형사가 급하게 화장실을 갔다가 
나무 기둥에 있는 조그마한 구멍을 발견하게 되고, 
그안에 손을 넣어봤더니 작은 종이뭉치가 손에 잡히게 되어, 
꺼내보니 밤톨만한 크기의 청산염 덩어리를 발견하게 된겁니다. 

이 청산염은 김선자가 약품회사에 다니고 있던 친척 조카에게 
'자신이 꿩을 잡아야 해서 독이 든게 필요하다.' 며 말하고 구한 약이였고, 
이렇게 화장실에 숨겨두고 피해자들을 독살할때마다 조금씩 조금씩 꺼내서 썼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 김선자의 모든 혐의를 밝히기에는 역부족이였습니다. 
결국 경찰은 피해자들의 유족들을 설득하기 시작합니다. 
당시에는 유족들에게 '부검을 해봅시다.' 라는 말을 꺼내기 조차 어려운 시대상황이였습니다. 
그런데 하물며, 무덤속에 있는 시신을 꺼내서 부검을 하자고 말하는 것은 아주 어려운 일이였습니다.

하지만 경찰의 끈질긴 설득 끝에 결국 유족들은 동의하게 됩니다. 
이미 화장을 한 김선자의 아버지를 제외하고 나머지 시신의 대한 부검이 진행되었고, 
그 결과 시신의 몸 속에서 청산염 성분이 검출됩니다. 


 

 




그리고 김선자는 바로 무너지듯 자신의 범행을 자백하게 되죠. 
총 5명을 살해한 혐의로 여성연쇄살인마 김선자는 사형이 선고 되었습니다. 

그리고 1997년 12월 30일. 
그녀는 우리나라 역사상 마지막 사형수로 형장의 이슬이 되었죠. 
이 처참한 사건을 보고 있다보면 드는 생각이 김선자가 왜 주변인은 물론 가족들까지 이렇게 살해했을까? 라는 생각이 드는데요. 

어쩌면 당연하지만, 한편으로는 허탈하게도 바로 돈때문이였습니다. 

 

김선자는 평소 캬바레를 출입을 하면서 사치와 도박을 일삼았고, 
그러다가 점점 쓸 돈이 모자르게 되자 주변사람들에게 돈을 빌리고 이걸 갚을 수 없게 되자 
더 많은 금품을 뺏기 위해서 범행을 저지르게 되었던 것이였죠. 

자신의 사소한 이익을 위해서 주변인은 물론 친가족까지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살해하는 김선자의 모습은 '희대의 살인마'라고 불리는 유영철에게도 지지 않아 보입니다.

 

지금까지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연쇄살인마로 기억되고 있는 김선자의 이야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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